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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러 바르톡의 업적, 전통의 재해석, 인문학적 가치

by ispreadknowledge 2025. 6. 28.

벨러 바르톡 관련 사진

클래식 음악 입문자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름, 벨러 바르톡. 그는 20세기 음악사에서 독특한 민속성과 현대성을 결합해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입니다. 아래 글은 오늘날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바르톡의 작곡 활동과 연구,  민속적 미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그의 창작물들을 분석해보고 이를 통해 창출된 문화적 유산에 대해 하나씩 설명합니다. 새로운 작곡가와 숨은 명곡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벨러 바르톡의 업적

벨러 바르톡(Béla Bartók)은 1881년 3월 2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 위치한 오늘날 루마니아 지역의 너지센트미클로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에 조예 깊었던 그의 어머니는 바르톡이 어렸을 때 부터 피아노 교육을 지도했고, 이는 1899년 그가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입학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작곡과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특별히 그의 초기 작품 형성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 것은 브람스의 고전적인 구조미와 리스트의 민족주의적 색채였습니다. 그는 리스트처럼 피아니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연주자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연주자나 작곡가에 그치지 않고, 음악학자이자 민속음악 수집가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초, 그는 절친한 작곡가 졸탄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터키, 심지어는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직접 탐방하며 민속음악을 녹음하고 채보하는 작업을 지속했습니다. 축음기를 이용한 이러한 현장 채록은 수천 곡에 이르며, 이는 민속학적 사료로서뿐만 아니라 작곡 활동 전반에도 핵심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민속 선율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다는 구조와 리듬, 음계의 특징을 분석하고 창작에 응용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창출했습니다.

평생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400곡이 넘으며, 장르도 다양합니다.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으로는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43)>, <무용 모음곡(1923)>, <두 개의 이미지(1910)>가 있으며, 실내악에서는 <현악 사중주 1번(1909)>부터 <현악 사중주 6번(1939)>까지 총 여섯 개의 중요한 작품군이 있습니다. 피아노 작품으로는 <미크로코스모스(1926–1939)>, <야성적 알레그로(1911)>, <피아노 협주곡 1~3번(1926, 1931, 1945)> 등이 존재하며, 발레 음악으로는 <놀라운 만다린(1919)>과 <목신의 아침(1915)> 등이 있습니다.

유럽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자, 바르톡은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건강 악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창작 활동을 이어갔는데, 몇몇 중요한 후기작들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백혈병을 앓던 그는 결국 1945년 9월 26일,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통의 재해석

바르톡의 음악 스타일은 민속성과 현대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로, 단순한 민속 선율의 활용을 넘어서 음악적 구조와 리듬, 화성에 이르기까지 민속 전통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고전적인 형식미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화성적 실험과 리듬적 구조를 도입하여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작 <루마니아 민속 무곡(1915)>은 짧은 여섯 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민속 선율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바르톡 특유의 간결하고 절제된 화성처리로 세련된 예술성을 부여합니다. 특히 다섯 번째 곡 ‘루마니아 폴카’에서는 비대칭 리듬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마치 무조 음악에 가까운 불협화음적 화성이 민속적인 정서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43)>에서는 더욱 복합적인 음악 구조가 전개됩니다. 총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악기군이 주인공처럼 부각되는 구조를 통해 ‘협주곡’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다층적 음향을 창출합니다. 특히 두 번째 악장 ‘간주곡: 무덤 위의 게임’에서는 바르톡 특유의 폴리리듬이 복잡하게 교차하며, 세 번째 악장에서는 민속적 선율이 새로운 화성적 배치로 재탄생합니다. 이 곡은 바르톡 후기 음악의 정수라 평가받으며, 미국 망명 후 환경적 불안 속에서도 그의 창작성이 여전히 절정에 달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미크로코스모스(1926–1939)>는 피아노 학습자를 위한 교육적 목적과 더불어, 민속적 요소와 현대 음악 기법을 실험한 연구작으로도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에는 153곡의 소품이 포함되며, 점차 난이도가 증가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후반부에는 5음 음계, 변박자, 비화성음, 대위법 등 다양한 기법이 도입되며, 6권의 후반 곡들에서는 12음적 구조나 폴리리듬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불협화의 연습’에서는 화음의 긴장도를 이용해 조성 밖의 질서를 탐색하는 과정이 드러나며, ‘부조화의 춤’에서는 비대칭적 박자가 민속적 춤 구조에 융합되어 등장합니다. 이처럼 바르톡의 작품은 단순히 듣기 좋은 선율을 넘어서 음악이론, 민속학, 감성의 융합적 결정체로, 클래식 입문자에게 음악의 구조적 매력을 이해하게 하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인문학적 가치

그가 창안한 민속음악 기반 창작 방식은 20세기 중반 이후 ‘에스노모더니즘(ethnomodernism)’으로 불리는 흐름을 이끌었는데, 특히 동시대와 20세기 이후의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작업물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헝가리의 졸탄 코다이, 폴란드의 비톨트 루토슬라브스키, 미국의 작곡가 조지 크럼 등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던 코다이는 바르톡과 함께 민속음악을 수집했던 인물로 교육 음악 개척에 기여했으며, 루토슬라브스키는 바르톡의 화성 언어와 민속적 리듬 기법을 더욱 확장된 음렬 음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조지 크럼은 <검은 천사(1970)>와 같은 작품에서 바르톡의 극적 음향 구성, 퍼커션의 활용, 극단적 음색대비 등에서 영향을 받아 현대 클래식에 실험적 요소를 강하게 도입했습니다.

현대 사회의 다문화성과 예술적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고 있는 바르톡의 음악은, 21세기 음악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이론적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술은 민족적일수록 세계적이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로컬의 가치를 글로벌한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이는 현대 음악에서 전통과 실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제공합니다.

순수 예술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음악은 큰 가치를 가집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 인간과 사회, 문화의 본질을 음악이라는 탐구하고 담아낸 것입니다. 바르톡이 민속음악에 천착한 것은 단지 소재 차용의 문제가 아니라, 억압받는 민족들의 언어와 감정을 예술로 복원하려는 문화적 저항과 복원의 시도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접근은 음악을 통해 집단 기억과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 속 개인의 위치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민족 분열의 시기를 관통하며 활동한 그는, 예술이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도 정치적 현실을 담는 철학적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음악 평론가 폴 그리피스(Paul Griffiths)는 바르톡에 대해 이렇게 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과거의 흔적을 담되,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이는 바르톡 음악의 본질이 단순히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닌, 시대를 넘어서는 예술의 지평을 보여준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