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EDM과 다양한 장르 융합 방법을 알아 본 데에 이어, 오늘은 전자 음악에 한국적인 미를 담아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는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세계 무대에서 주목 받는 Peggy Gou는 단순한 DJ나 프로듀서가 아니라, 음악가로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가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이 글에서는 Peggy Gou의 대표 앨범 분석, 고유한 음악 스타일,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는 음악적 정체성에 대해 음악가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앨범 분석 – 디스코그래피 속 사운드 진화
Peggy Gou의 디스코그래피는 그녀의 음악 철학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단순히 EDM 트랙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그녀는 각 앨범과 싱글에서 시대적 감성과 자신의 내면을 음악적으로 기록하고 해석해왔습니다. Peggy Gou의 음악 여정은 2016년 영국 레이블 Phonica White를 통해 발표한 데뷔 EP ‘Art of War’로 본격화됩니다. 이 앨범은 미니멀한 테크노 기반에 아날로그 신스와 저음이 강한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초창기 그녀의 사운드 탐색기를 잘 보여줍니다.
이후 발표된 ‘Seek for Maktoop’ EP와 ‘Once’ EP는 그녀의 음악이 단순한 클럽 트랙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을 담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Once’ EP는 그녀의 대표곡 ‘It Makes You Forget (Itgehane)’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 곡은 한국어 가사가 들어간 보기 드문 딥하우스 스타일로, 그녀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상징적인 곡입니다. 반복적인 멜로디, 리듬감 있는 베이스, 그리고 한국어의 억양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해외 청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2023년에는 ‘(It Goes Like) Nanana’라는 싱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TikTok을 통해 바이럴되었고, Peggy Gou가 EDM과 팝, 복고 스타일을 절묘하게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다시금 입증했습니다. 이 곡은 90년대 유로댄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단순한 멜로디와 감정적 보컬라인이 어우러져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리듬과 멜로디의 흐름은 단순하지만, 전체적인 사운드 디자인은 디테일하게 조율되어 있어 반복 청취 시 새로운 사운드를 발견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는 EP, 싱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트랙이 매우 독립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고, 꾸준히 하나의 음악적 흐름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일관된 예술적 방향성이 돋보입니다. 앨범을 단순한 수록곡 집합이 아닌 하나의 음악 여정으로 본다면, Peggy Gou의 작품은 시대별 사운드 실험과 정체성 탐색의 여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일 분석 – 복고와 현대의 조화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한마디로 “복고와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교차점”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90년대 사운드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닌, 그 시대의 정서와 기술적 한계를 현대의 사운드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그녀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그녀는 유럽 전자음악의 황금기였던 1980~90년대 디스코, 하우스, 테크노, 유로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왔습니다. Peggy Gou가 특히 자주 사용하는 리듬은 ‘4 on the floor’ 형태의 전형적인 하우스 비트입니다. 그러나 이 비트 위에 얹히는 신스, 보컬 샘플링, FX 사운드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층적인 구조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트랙 ‘Han Jan’에서는 복고풍의 신스 패턴 위에 펑키한 베이스라인을 결합해 펑크와 디스코의 요소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장르 혼합을 넘어 고유의 스타일 구축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Peggy Gou의 음악은 ‘노스텔지어’를 강하게 자극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들었던 음악들과 베를린에서 접한 전자음악 문화가 혼합되며 만들어진 결과로 보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음악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듯 넘나들며, 복고적 감성과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을 동시에 구현하는 데 능합니다. 또한, 사운드의 구성뿐 아니라 믹싱 기법에서도 빈티지한 아날로그 감성을 재현하기 위해 일부러 테이프 질감의 질감 표현이나 로우파이한 음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대 위의 Peggy Gou 또한 그녀의 스타일을 완성시키는 요소입니다. 그녀는 전자음악 DJ이면서도 퍼포머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무대 비주얼 연출에서도 그녀의 음악 철학이 반영되며, 특히 의상과 조명이 음악의 리듬과 호흡을 맞추는 등 일관된 스타일 연출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단순히 사운드만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몰입형 아티스트’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음악적 정체성 – 한국적 감성과 글로벌 정서의 융합
음악 정체성 또한 매우 독특한데, 전자음악이라는 보편적인 언어 위에 한국적인 감성과 정체성을 섬세하게 융합시키는 능력은 그녀만의 차별화된 강점입니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자기 인식을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이는 표면적인 한국어 사용에 그치지 않고, 음악의 구조, 리듬감, 감정선, 심지어는 곡의 흐름과 마감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대표곡 'Starry Night'과 'It Makes You Forget'은 한국어 가사가 포함된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곡의 분위기입니다. 그녀의 음악은 묘하게 서정적이면서도 단조롭지 않으며, 일종의 한(恨) 정서가 느껴지는 독특한 멜랑콜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적인 감성 중에서도 가장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정서로, 단순한 트렌디함을 넘어서 진정성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또한, Peggy Gou는 한국 전통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백의 미’를 리듬과 사운드 구성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녀의 트랙에서는 모든 공간을 꽉 채우기보다는, 적절한 공백과 반복을 활용해 청자의 몰입을 유도합니다. 이는 전통 국악에서 사용하는 ‘장단’의 개념과도 유사하며, 음악의 흐름 안에서의 여유로움과 리듬의 순환적 구조가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녀의 음악은 이처럼 한국적인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EDM 시장에서 통용되는 사운드 구조와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이는 곧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허무는 ‘글로컬(Glocal)’ 전략의 모범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Peggy Gou는 음악뿐 아니라 자신의 패션, 브랜드, SNS 커뮤니케이션 등에서도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 세계 청중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전자음악 시장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해외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오히려 한국적인 정체성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얻었습니다. 이는 K-POP 중심의 한국 대중음악 흐름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과 다양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사례이며, 후배 전자음악 아티스트들에게도 롤모델로 작용합니다.
음악가의 시선에서 본 Peggy Gou는 단순히 인기 DJ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뿌리와 현대적 트렌드를 결합한 독창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녀의 앨범은 감각적인 프로덕션과 복고적 감성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음악 스타일은 장르를 넘나들고, 정체성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EDM 시장뿐 아니라 세계 음악계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합니다.